★ 경주이씨 오촌공(慶州李氏梧村公)은 고려말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10대손으로 휘(諱)는 대건(大建,1550~1574)이고, 자(字)는 여립(汝立), 오촌(梧村)은 그의 호(號)이다. 계유(癸酉) 1574년(24세) 진사시(進士試)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고 일찍이 재종조(再從祖) 섬계공 문하에서 수학 하였으며 한림원에 출입 하면서 이름이 높았다. 또한 사람들이 칭하기를 관중(館中)의 안자(顔子)라고 칭찬들 하였다.
갑술(甲戌)1574년 향년 25세로 아깝께도 병으로 졸하니 증(贈) 좌찬성(左贊成)이요. 청주 송천서원에 배향되셨다. 배위는 안동김씨 부사직(副司直) 주(籌)의 따님이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셨는데 장자(長子)인 벽오 시발(碧梧 時發)이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증(贈) 영의정 (領議政)이요. 차자(次子) 풍천도호부사(都護府仕) 시득(時得)이다. 경주이씨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한 소파(小派) 문중족보로 경주이씨 최초로 한글, 한문을 병용한 족보이다.
집필>이재훈
새끼양이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면 신동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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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이씨 오촌공(慶州李氏梧村公)은 고려말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10대손으로 휘(諱)는 대건(大建,1550~1574)이고, 자(字)는 여립(汝立), 오촌(梧村)은 그의 호(號)이다. 계유(癸酉) 1574년(24세) 진사시(進士試)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고 일찍이 재종조(再從祖) 섬계공 문하에서 수학 하였으며 한림원에 출입 하면서 이름이 높았다. 또한 사람들이 칭하기를 관중(館中)의 안자(顔子)라고 칭찬들 하였다.
갑술(甲戌)1574년 향년 25세로 아깝께도 병으로 졸하니 증(贈) 좌찬성(左贊成)이요. 청주 송천서원에 배향되셨다. 배위는 안동김씨 부사직(副司直) 주(籌)의 따님이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셨는데 장자(長子)인 벽오 시발(碧梧 時發)이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증(贈) 영의정 (領議政)이요. 차자(次子) 풍천도호부사(都護府仕) 시득(時得)이다. 경주이씨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한 소파(小派) 문중족보로 경주이씨 최초로 한글, 한문을 병용한 족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