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원정씨세보로 검색하면 1939년의 11권짜리와 7권짜리 2종이 뜹니다. 검색 잘 됩니다.
영양땅다람쥐가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양숙동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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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원정씨 족보를 열람하고 싶은데 검색이 안됩니다.
왜가리가 경기도 김포군 하성면 폐암리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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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입니다. 항렬로는 계파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자신의 정확한 계보는 알 수 없습니다. 아직 전주최씨의 항렬 정보를 확보하지 못하여 도움이 못 될 것 같네요.
노랑띠하늘소가 황해도 봉산군 초와면 귀암리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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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전 전주최씨인데 족보가 소실되어서요 할아버지가 성이나 인자 항렬을 가지셨고 아버지는 완자로 추정되는데 혹시 알수있을까요?
상상의동물이 황해도 재령군 재녕면 국화리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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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보정보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돌조개가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병방동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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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입니다. 함경도가 고향인 평산신씨 후손님! 제가 알아볼 방법을 갖고 있사오니, 이 글을 보신다면 증조부 신석관님의 함자를 漢字로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조부에 대한 사항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곳에 남겨주시거나, 이메일 ejokbo@gmail.com로 보내주십시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잎벌레가 함경남도 정평군 장원면 율천리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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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입니다. 개략적인 조사를 해보니 함경도가 고향이라고 하여도 꼭 평산신씨의 어느 계파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평산신씨 발원지 자체가 황해도이기 때문에 함경도나 황해도 전체가 집성촌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증조부 함자만 가지고 평산신씨 족보를 전수조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조사를 더 해보고, 그 결과를 꼭 이곳에 남길 터이니 얼마간 뒤에 다시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침노린재가 함경남도 함흥군 덕산면 신풍리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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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후퇴때 함경남도 흥남시 서호리에서 피난을 오는 통에 족보를 가지고 오지 못하였고, 돌아가신 부친께서 "가첩"을 남기셨습니다. 저는 평산 신씨 33대이고' 증조부(30대) 신석관까지는 알고 있으나 그 윗대로의 연결을 못하고 있습니다. 함경도가 고향이니 "한성윤공파"가 틀림없다고들 하지만 이것도 확실하지 않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29대와 연결먼 할수있으면 가능할텐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양놀래기가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무이리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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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입니다. 전자족보를 만들지 않은 집안이라면 이름과 생년월일만으로 일일이 책을 뒤져서 계파를 찾기란 어렵습니다. 선조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구하셔서 의령남씨문중에 문의해보세요.
동부띠뱀이 함경남도 안변군 신모면 율리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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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남씨이구요.. 53년생이구요.. 음력 7월29일 장남이구요.. 남이철 몇대손인자.. 뿌리, 씨, 파 등... 족보에 알고 싶습니다.
이구아나가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면 산취정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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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입니다. 김건식님 반갑습니다. 뿌리찾기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무엇보다도 이름(諱)입니다. 말씀해주신 바에 따르면 증조부 함자를 알 수 없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리고 가계가 실전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할머니나 외가 쪽 족보에는 혹 기록되어 있지 않은지?... 대구지방재판소 문서에 1854년생 김도언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혹 생년 확인이 가능한지? 백부 및 부친께서 다니셨던 학교의 학적부를 발급받아 단서가 없나 보시고, 파악할 수 있는 기존 거주지의 구토지대장도 확인해보십시오. 막연하지만 이것저것 자료를 수집하면 관련 자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눈신멧토끼가 평안남도 개천군 군내면 승창리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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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본관과 파를 알기 원 합니다.
의성 김씨이며, 본관이 어디며, 무슨 파 인지도를 모름 .
할아버지 함자는 도언(道彦) ,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후 백부께서 집안 대소사에 참석하기위해 서울(경기)에 다녀가셨음, 저의 부친과 백부님의 함자는 일본강점기에 철도공무원으로 계셨기 때문에 부돌(扶乭)이시며 , 항렬과는 무관하셨음. 제부친의 함자도 차돌(且乭)이셨음. 이후 백부님께서 병환으로 일찍 돌아가신 후로는 나이 차가 많으신 제 아버님께는 집안의 전력이 전달이 되지 않았음. 할아버지께서 만세사건에 연루되시어 집안의 화를 면키위해 족보에서 이름을 지우시고 경남 양산에 혼자 내려오셔서 가계를 이루셧음. 제 아버님도 건설부 공무원으로 계시면서 족보를 찾기위해
애를 쓰셨으나 토목기술공무원이라 거의시간을 낼 수 없었으며, 결국 근무중 돌아가시게되어 평소 제게 족보를 찾도록 하신말씀이 유언이 되어
늦게나마 찾아보려합니다.
할아버님은 양산에 오신후 일본관원의 후환을 피해 홀로계신 분(동성동본인 金仁守) 아래로 입적 했으며, 동래부사 따님과 혼인하셨음. 특별한 직업은 없었음, 자주 동남아와 만주 등 으로 다니셨다 함. 저의 백부님과 아버님이 일제강점기 인데도 학부를 나오셨으며, 이러한 정황으로 볼때 할아버님의 본가에서 계속적인 지원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집에 화재가 나기전 고종황제의 사령장등 많은 문건이 있었다는 아버님의 말씀도 있었음,
참고로 제 이름은 건식(健植)이며 1949년 11월생, 역시 항렬과는 무관합니다.